한국의 음악
국악의 사상은 예악에 바탕을 두었고, 정서 순화와 인격 함양에 근본 정신이 뿌리 박고 있다.국악은 선율적이고 자연적이며 철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니, 이는 화성적이고 기계적이며 과학적이라는 양악 특질에 비하여 좋은 대조가 된다.따라서 국악의 기본적 요소에 가락과 장단과 멋을 들 수 있겠다.-김기수저<국악입문>
한국의 음악,즉 국악의 분류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쉽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분류해보았다.
정악
정악은 아정한 음악이란 뜻으로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아악의 연례악과 제례악,군례악등이 포함된다.
민속악
현재 전해지는 민속악은 조선시대 후기 문화융성기에 형성된 것들이다.산조,시나위,무악,민요,잡가,판소리,풍물등이 이에 속한다.
산조
散調의 어원을 보면 흩어진 가락,즉 허튼가락이란 의미를 지닌다.산조란 이 흩어진 가락을 각기 장단의 틀에 맞추어서 짠 몇개의 소곡을 모아 만든 모음곡이다.산조는 남도지방의 무속음악 시나위 가락에서 나온 기악 독주곡으로 가야금산조가 가장 오래 되었고 그 다음 거문고 산조가 연주되었는데 현재는 대금,피리,해금,아쟁 등의 여러가지 악기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산조의 장단은 판소리에서와 같이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가 기둥이 되고,그 밖의 장단은 연주하는 사람과 악기의 성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그런데 이러한 이름은 각 악장의 이름과 같이 쓰고 있지만,사실은 산조의 빠르기와 리듬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가야금 산조에 있어서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까지는 같으나, 그 다음은 유파에 따라서 엇모리가 들어가거나 휘모리나 단모리 가 들어가기도 하고 단모리 대신 세산조시의 이름으로 바꾸어 쓰기도 한다.그러나 거문고,피리,대금,해금과 같은 악기에 의한 산조는 휘모리 이하 빠른 속도의 곡은 연주되지 않는다.
시나위
시나위는 전라도,충청도,경기도 남부의 무속 음악에서 유래된 음악으로 神房曲 또는 心房曲이라고 불린다.시나위 가락은 경기도와 전라도의 경우 판소리 또는 산조의 계면조 가락과 비슷하고, 다만 전라도 시나위만은 진계면 쪽에 가깝고 경기도 시나위는 평계면 쪽에 더 가깝다.시나위의 장단을 두고 살풀이장단이라 이르는데,경기 지방에서는 도살풀이장단이라고 부르고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냥 살풀이라고 부르고 있다.도살풀이 장단은 1각 6박으로 빠른 진양조와 같다.전라도 지방의 살풀이는 1각 4박으로 민속악의 중중모리와 같다.처음에 느린 살풀이로 시작하여 빨라지면서 빠른 살풀이로 종결된다.쓰이는 악기는 피리,대금,해금,장구,징,북으로 되어 있으나 가야금,퉁소,호적 등을 곁들이기도 하고 요즘은 아쟁이 더해지기도 하나 원식은 아니다.시나위의 선율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즉흥적인 것이므로 각 악기가 불협화음을 이루어 가며 제멋대로 연주하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갖는 점에 묘미가 있다.
무악
민속 신앙 의식의 하나인 굿에서 노래나 노래의 반주,춤의 반주등 음악이 쓰이는데 이것은 무속음악 즉 巫樂이라고 부른다.무악에 쓰이는 악기는 지방마다 편성이 다른데 대개 장구와 징을 주로 하고 가끔 꽹과리와 바라를 곁들이기도 한다.경기도,충청도,전라도와 경상도 일부에서는 피리,해금,대금과 같은 관악기를 첨가시키기도 한다.무악의 선율은 단순하며 대개 그 지방의 민요 선율에 가깝다.서울 지방 무가는 '창부타령'과 '노랫가락',충청도,전라도는 '육자배기',강원도,경상도는 '강원도 아리랑',황해도,평안도는'수심가'와 같은 선율이 많다.경기도에서는 삼현육각의 음악을 무 의식에서 많이 쓰는데 이것은 모두 순수 무악이라고 할수는 없다.긴염불,자진염불,굿거리,허튼타령,당악 등은 무 의식의 무용반주 음악으로 연주되는데,이것은 무의식의 무용이 아닌 승무,가면무와 같은 전통 민간 무용의 반주 음악에도 쓰이는 것들이다.
민요
민요에는 한 시대 한 고장 사람들의 인정과 풍습이 담겨 있고, 그 고장 사람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가락이 들어있다. 때문에 그 고장의 특유한 가락으로 표현되는 민요는 그 지방만이 갖는 사투리와 말의 억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찌기 육당 최남선 선생은 각 지방 민요가 갖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영남풍은 웅훈하며 위압적이고,호남풍은 일반적으로 여유가 있고 부드러우며,서울풍은 맑고 한아하며 궁정적인 맛이 넘쳐 흐르고,서도풍은 어딘지 모르게 촉박하고 탄식하는 듯 상심아닌 것이 없다."
잡가
조선말기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 전문 예능인들의 노래,곧 기생이나 사당패의 소리꾼과 같은 전문가들이 긴 사설의 가사를 선율에 얹어 부르선 세속적인 노래를 말한다. 잡가와 민요는 흔히 혼동되기 쉽다.막연하게 세속적인 노래라 하여 잡가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그 고장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을 드러내며,대중성을 가진 소리를 민요,또는 잡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잡가와 민요에는 엄연한 한계성이 있다. 경기12잡가는 유산가,적벽가,제비가,집장가,소춘향가,선유가,형장가,평양가,달거리,십장가,출인가,방물가이고 앉아서 부르는 경기잡가,서도잡가와 서서 부르는 선타령으로 나눌수 있다.장단은 대개 6박자의 도드리 장단이며 사설의 내용은 서민들의 희노애락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창법은 굵고 폭이 넓은 요성을 쓴다.
판소리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라 무대 소리란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는 민속악 장르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성악곡의 갈래이다.아니리와 발림을 섞어서 엮는 소리조로,소리로만 엮지 않고 발림이라는 동작이 수반되고 이야기하듯 말하는 대사가 종합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이하다.반주는 다만 북 하나가 따를 뿐인데,그의 소임이 매우 중요하다.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함화진 선생은 신라 시대 화랑도에 그 맥을 대려고 했는가 하면,일부에서는 조선 시대 중엽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다만 소리를 전업으로 하던 광대들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 집에 불려가 덕담을 외우는 홍패고사를 주재했다는 사실과 추수하는 농촌에서,또 고기잡이를 쫓아 어촌에서 대중을 상대로 소리를 팔았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판소리가 원래 제사 의식에서 발생하였지만 그 뒤 대중 오락으로 옮겨진 것이라는 설도 밝혀져 있다.
풍물(농악)
농민들이 꽹과리,징,장구와 같은 타악기를 연주하면서 춤,놀이,의식,노동 등을 연출하는 음악을 농악이라고 하는데 지방에 따라 풍물,굿,매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농악은 상고시대 제천의식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악기의 소리가 신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믿어서,부족 사회의 종교 의식을 비롯해 군대의 행진이나 집단 노동에 북과 징 같은 악기를 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무용
(1)한국무용이란
한국 무용은 우리의 춤으로 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생활 속에 수용한 우리 민족의 몸짓이며 감성이라 할 수 있다.한국의 무용은 인간의 감정을 수양버들과 같이 흥에 겨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며, 인위적이거나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몸짓이라고 할수 있다. 춤을 통해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경험들을 풀어낼 수 있으며, 상대방의 움직임을 통하여 그러한 경험들에 동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무용은 정(靜)·중(中)·동(動)의 무용이며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룬 무용이다. 현재의 무용은 전통을 바탕으로 정적인 움직임과 다이나믹한 역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삶의 도덕, 생활, 습관이 다양한 동작으로 계속 변형, 발전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는 한국무용은 우리의 몸짓으로 용해되어져 나타나며 그러한 한국무용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의 형태와 미래의 변화를 새롭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즉 오늘날의 한국무용은 오늘의 창작이 내일의 전통을 의미하며 끊임없이 변화되어지고 사라지고, 새로이 생성되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한국무용의 흐름
무용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무용은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변화하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 무용의 변화 그 자체가 사회의 변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무용 또한 우리 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담은 채 발전과 변형을 거듭해 왔다.
한국무용의 역사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나라 무용의 발생과 마찬가지로 한국 무용 또한 종교적 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춤은 '제천의식'으로 활동되어져 의식적 형식을 갖추게 되면서 한국 무용의 틀이 잡히게 된다. 종교적 제의식에서의 무용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집단과 국가의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고, 전승되게 되었다.
중국문헌인 《한서 동이전(漢書東夷傳)》을 보면, 초기 한국 무용의 형태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중국 하소강(夏少康) 때에 우리 춤과 음악이 중국에 전해져 연희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상고시대의 한국 무용이 앞선 위상과 수준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또한《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을 보면 삼한시대의 가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부여 .고구려 .동예는 일정한 시기를 두고 온 마을 사람이 한데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가무를 베푸는 연중행사가 있었는데 이것이 영고, 동맹, 무천이다. 이후 한국 무용은 국가의 연희 때 행해지는 궁중무용으로도 발전해 갔고 민간에서는 민속놀이로 연희 전승되었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 외에도 양반들의 풍류문화가 기방에 전해져 행해졌던 무용은 오늘날 전통무용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무용은 무속종교 무용으로 발생되어져 궁중무용, 민속놀이, 전통 무용의 큰 축을 이루며 변형 발전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또한 1900년대 서양무용의 영향을 받아 신무용화되고 무대화되기도 하였고, 오늘날에는 한국무용의 창작화가 대중화되어 창작무용도 한국 무용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한국 무용은 전통은 전통으로서 보존 전승되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창작무용이 활발하게 발표되며 공연되어지고 있다.
(3)궁중무용
궁중무용은 정재(呈才) 또는 정재무(呈才舞)라고 하는데, 이 정재란 말은 '군왕에게 헌기(獻技)한다', 즉 '기예(技藝)를 고귀한 분께 보인다'는 뜻으로 궁중의 여러 행사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연희되는 무용을 말한다. 따라서 정재는 군왕 등의 윗분에게 바치는 예술적 형태 즉 가무악의 통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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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무 |
궁중무용이라는 개념은 왕권정치의 체제가 성립한 삼국시대 이후 나라의 각종 행사나 의식, 궁중의 연례 등에 춤이 쓰이면서부터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이는 궁중의 향연, 국빈을 위한 연회 또는 나라의 경사에 추어졌기 때문에 민중의 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그 내용 또한 왕실의 존엄과 위엄을 찬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의식의 한 절차로 만들어지고 연희되었던 궁중무용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본연의 목적인 의식과 행사는 소홀해지고 그에 따른 춤이나 음악만이 남아 독립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궁중무용은 유형적 형태에 따라 당악정재(唐樂呈才)와 향악정재(鄕樂呈才)로 나눌 수 있다.
(4)전통무용
한국의 전통 무용은 오랜 세월 동안 종교의식으로, 또는 궁중이나 민간에서 전승되어 오다가 1905년 국립극장격인 원각사(圓覺社)가 개장함으로써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 함께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신무용과 함께 대두되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면서 무용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전통무용은 극장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공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무용에 대한 전승이나 발전은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차단되었고, 이외에 1919년에 다양한 서구의 춤이 도입되어 무대상연을 위한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창안된 한국무용이 서서히 일어났다.
이와 같은 시기에 우리 민속무용에 가장 뛰어난 예인으로 한성준(韓成俊)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여러 지방의 민속무용을 정리하고 승무,태평무,학무 등을 창안하기도 했다. 그의 춤들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책정되어 그의 손녀인 한영숙이 계승 발전시켰다.
1945복 이후 한국은 남.북으로 양단되어 무용계에도 무용의 해석방법, 표현법 등을 놓고 커다란 대립이 나타났고, 전통무용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 단순한 춤동작의 고답적 답습이 아닌, 살아 있는 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급한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5)신무용
「최승희」
신무용이라는 용어는 1926년 3월 21일 일본인 석정막의 경성공회당에서의 공연을 "신무용 공연”이라 한 것에서 기원되었고, 신무용의 기점도 1926년으로 보고 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이시이의 문하생이 된 최승희(崔承喜), 조택원(趙澤元)은 한국 신무용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제승에 의하면 신무용이란 '낡은 것과 새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새로운 이념, 새로운 방법으로 형성되어지는 새로운 무용, 또는 현대무용 사상에 바탕을 두고 창조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한국무용이란 의미로 파악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신무용의 개념은
1) 서양식의 양춤
2) 신식의 춤
3) 신문화를 갈구하던 시대에 창의적 요소를 가미한 춤
4) 한국의 독자적인 춤 양식과 미의식, 그리고 창조적 신체 움직임으로서 전개하는 새로운 시,공간적 극장종합무대 예술로서의 민족무용, 전통적 한국무용을 시대에 부흥하게끔 창조적으로 만든 무용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신무용은 순수창작보다는 전통무용에 외래무용수법을 가미한 형태였고, 1960년대부터 송범(宋梵), 김백봉(金白峰) 등에 의하여 민속무용을 예술적으로 정립되었다. 발레에서는 함귀봉(咸貴奉), 김막인(金漠人) 등에 의하여 유지되던 현대무용이 육완순(陸完順)에 의하여 예술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6)창작무용
창작무용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신무용과 1980년대에 발전한 창작무용이 있다. 이 모든 무용은 시대에 따라 서로 관련을 맺고 변화·발전해 왔으며, 거기에는 흥과 멋과 우아함이라는 우리의 미적 정신이 담겨 있어 가(歌),무(舞),시(詩)가 일체를 이루는 종합적 예술창조로 오늘날까지 거듭 발전해 오고 있다